[여의도풍향계] '검수완박' 그 후…의회 민주주의 설 자리는<br /><br />[앵커]<br /><br />이른바 '검수완박'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된 뒤, 여야는 더욱 거세게 충돌하고 있습니다.<br /><br />여야가 혼란의 책임을 상대 당에 돌리는 가운데, 숙의와 타협을 기초로 하는 의회 민주주의는 설 자리를 점점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.<br /><br />서혜림 기자입니다.<br /><br />[기자]<br /><br />'검수완박', 최근 정치권을 가장 뜨겁게 달군 말입니다.<br /><br />법안의 발의부터 공포까지 걸린 시간은 단 18일.<br /><br />지난 달 15일 더불어민주당은 소속 의원 172명 명의로 법안을 발의했고, 국회의장 중재로 여야가 극적인 합의를 이루는 듯했지만, 국민의힘이 입장을 바꾸면서, 입법은 민주당의 '독주'로 처리되고 맙니다.<br /><br />그렇다면 왜 민주당은 검수완박에 사활을 걸었을까.<br /><br />대선 때부터 이어지던 '메시지'에 그 답이 있습니다.<br /><br /> "지금 검찰은 있는 죄도 덮어 버리고, 없는 죄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조직입니다. 검찰 공화국의 공포는 그냥 지나가는 바람의 소리가 아닙니다. 우리 눈앞에 닥친 일입니다."<br /><br />즉, 윤석열 정부 출범 전에 무소불위의 검찰을 확실히 개혁해야 한다는 의지, 공수처 설치만으로는 개혁이 완수됐다고 볼 수 없다는 당내 높은 목소리가, 이런 '초고속' 입법으로 이어진 겁니다.<br /><br />하지만 법안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국회는 또 한 번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냈습니다.<br /><br />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고성이 터져 나왔고, 본회의를 앞두고는 개의하려는 쪽과 막으려는 쪽의 육탄 공방전이 펼쳐졌죠.<br /><br />당장 민주당은 국회의 품위를 훼손한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해 징계해야 한다며 엄포를 놨습니다.<br /><br /> "지난달 26일 법사위에서 국민의힘이 저지른 국회선진화법 파괴 행위와 30일 국회의장에 대한 본회의장 진입 방해와 배현진 의원의 언동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. 징계안 상정 등 적법한 후속 조치를 밟겠습니다."<br /><br />하지만, 국민의힘은 징계를 받아야 할 쪽은 법 정신을 훼손한 민주당이라고 응수했습니다. 민주당이 먼저 각종 편법으로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했다는 지적입니다.<br /><br /> "정작 징계를 받아야 할 대상은 민주당의 박광온 법사위원장, 민형배 의원입니다. 여야 간 합의 없는 법사위의 일방적인 처리, 회기 쪼개기를 통한 필리버스터 무력화, 본회의 시간 일방 변경 등 민주당이 저지른 꼼수와 편법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."<br /><br />국회 선진화법은 2012년 5월 2일 18대 국회에서 처리된 국회법 개정안을 일컫는 말입니다.<br /><br />토론과 숙의는 실종되고, 몸싸움으로 얼룩진 '동물 국회'를 반성하며, 여야가 국회법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친 건데요.<br /><br />필리버스터와 안건조정위, 폭력을 동반한 회의 방해 금지 등이 바로 이때 도입된 제도입니다. 폭력 그 자체를 차단하는 데서 더 나아가, 여야가 숙의를 통한 '합의 정치'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죠.<br /><br />당시 여야 원내대표들의 포부 역시 컸습니다.<br /><br /> "그동안 우리 국회는 폭력적이었고 식물국회로서….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19대 국회부터는 그야말로 국민이 사랑하고 아낄 수 있는 국회로 거듭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."<br /><br /> "날치기와 몸싸움으로 얼룩진 국회를 만들 것이냐. 아니면 대화와 타협의 성숙한 정치 문화의 원년으로 만들 것인지 결정짓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."<br /><br />하지만, 민주당은 안건조정위의 '여야 동수 구성' 원칙을 훼손했고, '무제한 토론'이라는 필리버스터의 정의를 흔들었습니다.<br /><br />국민의힘 역시, 중재안에 사인까지 했다가 3일 만에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면서, 합의와 신뢰에 기초한 의회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죠.<br /><br />결국 10년 전 여야의 약속은 '희미해진 기억'으로 퇴색해 버린 겁니다.<br /><br />문제는, 여야 어디에서도 자성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.<br /><br />지방선거를 24일 앞두고, 오히려 '네 탓' 공방만 더욱 뜨거워지는 모습인데요.<br /><br />민주당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위해 사법개혁특위를 밀어붙일 태세이고, 국민의힘은 검경 수사권을 밑바닥부터 정리해야 한다며 정면 대결을 예고하고 있습니다.<br /><br />당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'복심'으로 불리는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여야는 '검수완박' 연장전을 이어갈 전망이고, 후반기 법사위 진행권을 둘러싼 논쟁이 벌써 점화되면서 전선은 더욱 확대될 조짐입니다.<br /><br />국회선진화법은 19대 총선 결과를 받아든 여야가 18대 국회의 마지막 합의로 이뤄낸 제도입니다.<br /><br />당시 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은 민주당에 여전히 앞서는 의석을 얻었지만, 18대의 '압승'보다는 뒤처진 성적표를 받아 들었죠. 또 여야는 같은 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었는데요.<br /><br />결국, 선거를 통한 민심의 '경고'가 여야를 국회선진화법으로 이끈 동력이 됐던 겁니다.<br /><br />숙의와 토론이 실종된 국회. 이를 되찾기 위해서 유권자가 가진 '표'의 힘이 더욱 절실한 때라는 평가가 나옵니다.<br /><br />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.<br /><br />연합뉴스TV 기사문의 및 제보 : 카톡/라인 jebo23<br /><br />(끝)<br /><br />